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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생애, 업적, 장례 절차와 후속 일정

by 정부 지원 매거진 2025. 4. 21.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생애, 업적, 장례 절차와 후속 일정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생애, 업적, 장례 절차와 후속 일정

 

2025년 4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셨다는 소식은 전 세계를 깊은 슬픔에 빠뜨렸습니다.

향년 88세. 그는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닌,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과 인류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던 상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선종은 단순한 개인의 죽음을 넘어, 하나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기간 동안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를 내세우며, 전통적인 교회의 틀을 넘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인물이었습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 환경 보호, 포용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하면서도 교황청의 개혁을 주도하는 등 그의 행보는 언제나 파격적이었습니다.

 

그의 선종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각국의 정치 지도자와 종교계 인사들, 일반 시민들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를 표하며, 그가 남긴 유산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교황청은 공식 성명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지막까지 기도와 사랑 속에서 생을 마감하셨다”라고 전하며 깊은 슬픔을 표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가 남긴 흔적과 메시지를 다시 새겨보아야 할 시간에 서 있습니다. 그의 여정,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 글을 통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1. 교황의 생애와 여정

프란치스코 교황, 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Jorge Mario Bergoglio)는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 화학 기술자로 일했으며, 이후 신앙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1958년 예수회에 입회했습니다.

그의 성직자 인생은 단순히 종교적 소명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며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해 왔습니다.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여러 교육기관에서 철학과 신학을 가르치고, 예수회 관구장과 같은 주요 직책을 맡으며 리더십을 키웠습니다.

1992년,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의 보좌주교로 임명되었고, 1998년에는 대주교로 승진하였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 사회는 경제적·정치적 혼란 속에 있었고, 그는 이 시기에 철저히 서민들과 함께하는 교회의 모습을 실천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사치 없이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이미 이때부터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추기경에 임명된 후, 그는 국제 무대에서 점차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사임 이후 열린 콘클라베에서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며,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처럼 가난과 평화를 상징하는 삶을 살겠다는 그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그는 라틴아메리카 출신 최초의 교황이자, 예수회 출신 최초의 교황이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등장은 전통적이고 유럽 중심적인 가톨릭 교회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 교황 재임 중 주요 업적

프란치스코 교황의 재임은 단순히 교회의 수장으로서의 역할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시대적 전환점이었습니다. 그의 행보는 가톨릭 교회의 보수적인 틀을 뛰어넘어, 보다 인간적이고 포용적인 교회를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였습니다.

 

📌 1. 가톨릭 교회의 개혁과 현대화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 내부의 비효율적이고 폐쇄적인 문화를 개혁하고자 과감한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바티칸 은행(Vatican Bank)의 투명성 제고, 성직자 성추문 사건에 대한 단호한 대응, 부패 척결 등을 통해 “보다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힘썼습니다. 특히, 성추행 사건에 대한 사과와 피해자들과의 직접 만남은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 2.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

그는 줄곧 “가난한 이들의 교회”를 강조하며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노숙인과 난민을 위한 의료 지원과 쉼터 제공, 빈곤국가 원조 촉구 등,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한 사례는 그의 재임 기간을 상징하는 모습 중 하나입니다.

📌 3. 환경 문제에 대한 목소리

2015년 발표한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는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기후 위기 대응에 있어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제시했습니다. 이는 세계 각국 정치인들과 시민사회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고, 교황이 단지 종교 지도자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했습니다.

📌 4. 포용과 다양성의 메시지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소수자(LGBTQ+)와 이혼 가정 등, 기존 교회가 배타적으로 대하던 이들을 향한 포용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했습니다. “우리는 판단하지 말고 사랑해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보수적인 교회 내부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고, 현대 사회와 종교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업적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닌, 시대의 양심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들입니다.

 

3. 건강 문제와 선종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점차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80세를 넘긴 시점부터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하며 정기적인 치료를 받아왔고, 특히 2021년 대장 수술 이후 건강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교황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공개적인 일정과 해외 순방을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공식 일정이 자주 취소되거나 단축되는 일이 늘어나면서 그의 건강 상태에 대한 염려가 다시 고조되었습니다.

바티칸은 간헐적인 건강 문제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지만, 점차 교황청 안팎에서는 교황의 후임을 둘러싼 논의도 조심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5년 4월 21일, 바티칸은 공식 성명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도와 평화 속에서 조용히 선종하셨다”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는 바티칸 내 자신의 거처인 산타 마르타 숙소에서 가족과 교황청 참모진의 배웅을 받으며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마지막 순간은 그가 평생 강조했던 ‘겸손과 사랑’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은 이 소식을 접하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애도했고, 많은 성당에서는 즉시 추모 미사와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여 그의 선종을 애도하며 촛불을 들고 기도하는 모습이 연출되었습니다.

그의 선종은 단순한 이별이 아닌,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메시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만드는 의미 깊은 사건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4. 장례 절차와 후속 일정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이 전해진 직후, 바티칸은 장례 준비와 차기 교황 선출을 위한 공식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교황의 선종이라는 중대한 사건을 맞이할 때 정해진 전통과 의전을 따라 장례 절차를 엄숙히 진행합니다.

 

📌 교황 장례식 일정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은 그의 선종 이후 다섯 번째 날인 4월 26일(현지 시간 기준),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집전될 예정입니다. 이는 바티칸 전통에 따라 교황이 선종한 날로부터 4~6일 내에 장례 미사를 집전하는 관례에 따릅니다.

장례 미사는 전 세계에서 모인 수백 명의 주교단과 추기경, 정치 지도자, 종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거행되며, 수많은 신자들도 성 베드로 광장에서 함께 기도하게 됩니다. 교황의 유해는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의 교황 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며, 이는 역사상 많은 교황들이 잠든 신성한 장소입니다.

 

📌 차기 교황 선출 – 콘클라베 일정

교황의 선종 후 가장 큰 관심은 새로운 교황의 선출, 즉 ‘콘클라베(Conclave)’입니다. 콘클라베는 전 세계 추기경단이 바티칸에 모여 비밀 투표를 통해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절차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 이후 약 15일 이내에 콘클라베가 열릴 예정이며, 80세 미만의 추기경 약 120명이 교황 선출 투표에 참여하게 됩니다. 콘클라베는 투표가 끝날 때까지 철저한 외부와의 단절 속에서 이루어지며, 새 교황이 선출되면 ‘Habemus Papam(우리는 교황을 모셨습니다)’라는 선언과 함께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서 새 교황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번 교황 선출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노선을 잇는 인물이 등장할 것인지, 혹은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인물이 나올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큽니다.

 

5. 세계 각국의 반응과 추모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고, 각국 정상과 종교 지도자, 시민들은 깊은 애도와 함께 그를 기리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종교계의 이슈를 넘어 인류 전체의 손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 정치 지도자들의 애도 메시지

미국 대통령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간 존엄과 평화의 대변인이었으며,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영적 나침반이었다”라고 추모했고, 프랑스 대통령은 “그의 겸손과 연대, 정의를 향한 열정은 전 인류에게 감동을 주었다”라고 밝혔습니다.

한국 대통령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따뜻한 메시지와 평화의 행보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라며 추모의 뜻을 전했고, 바티칸 방문 당시의 인연을 떠올리며 그와의 만남이 “삶의 지혜로 남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 종교계와 국제 단체의 반응

세계 주요 종교 단체들도 잇따라 성명을 내고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그는 종교 간 대화와 화해의 길을 열어준 지도자였다”라고 평가했고, 이슬람권 종교지도자들 역시 “그는 종교를 넘어 인류애를 실천한 인물”이라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유엔 사무총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류의 고통에 민감한 세계 지도자였으며, 기후 위기와 불평등에 맞선 용기 있는 목소리였다”고 밝혔습니다.

📌 전 세계 신자들과 시민들의 추모

가톨릭 신자들뿐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시민들도 거리에서 촛불을 밝히며 그를 기리고 있습니다.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은 순식간에 수만 명의 추모 인파로 가득 찼으며, 각국의 대성당에서도 특별 미사와 기도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SNS 상에서는 “#Francesco”, “#교황추모”, “#PrayForFrancis” 등의 해시태그가 확산되며, 그의 명언과 사진이 공유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그를 “사랑의 상징”, “희망의 목소리”로 기억하며, 그가 남긴 말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6.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유산은 단지 종교적 차원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는 현대 사회의 문제와 깊이 맞닿아 있었고, 인간 중심의 신앙과 실천을 통해 전통적인 가톨릭 교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 1.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라는 비전

그는 교황 즉위와 동시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가 되자”는 선언을 했고, 이는 그의 재임 전반을 아우르는 핵심 가치로 자리 잡았습니다. 교회의 권위와 화려함보다는 겸손과 나눔을 실천하는 모습은 전 세계 신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교회는 다시금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 2. 생태적 회칙과 지구 공동체에 대한 책임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통해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강하게 환기시킨 그는, 신앙이 자연과 사회적 책임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종교계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환경 운동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녹색 교황’이라는 별칭까지 얻게 했습니다.

📌 3. 포용의 교회, 열린 대화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소수자, 이민자, 이혼 가정, 무신론자 등 기존 교회에서 소외되었던 이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갔습니다. “하느님은 누구도 배제하지 않으신다”는 그의 말은 전통적인 교리와 현대 사회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 4. 교황청 내부 개혁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내부의 구조적 문제와 부패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을 주도했습니다. 특히 재정 시스템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비윤리적 권력 구조를 타파하려는 노력은 교황청 내부의 변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후임 교황에게도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할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 5. 신앙을 넘어선 인류애의 메시지

그는 종교 간의 대화,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는 평화 메시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연대 등 신앙을 넘어선 ‘인류애의 지도자’로 불렸습니다. 그의 삶과 발언은 세계 시민 모두에게 깊은 철학적 울림을 주었고, 교황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게 했습니다.

 

7. 결론: 기억과 기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은 단지 한 인물의 죽음을 넘어, 우리 모두에게 삶의 방향성과 인간에 대한 사랑, 그리고 공동체의 책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발걸음은 늘 낮은 곳을 향했고, 그가 남긴 말은 많은 이들의 삶을 위로하고 변화시켰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그를 떠나보내며 단지 슬퍼하는 것에 머물기보다는, 그가 남긴 메시지를 기억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해 나가는 것이 진정한 추모일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늘 “기도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를 위한 우리의 기도는 이제 전 세계가 하나 되는 영적 연대의 시작입니다.

📌 함께 드리는 기도

“하느님, 주님의 종 프란치스코를 당신의 품에 안아주시고, 그가 이 세상에서 실천한 사랑과 정의의 삶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의 겸손과 용기, 연대와 평화의 정신이 우리 모두의 삶에 이어지게 하시고, 그가 꿈꾸던 더 나은 세상을 우리 안에서 실현하게 하소서.
그가 영원한 안식 속에서 평화를 누리게 하시고, 남겨진 우리가 그의 유산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